크리스천 in Canada

캐나다에서 교회 찾기(내가 다닌 현지교회에서 느낀점)

CAKO 2022. 6. 27. 09:47

한국에서 우리 교회가 참..좋았다. 목사님들도 좋으시고 구역식구도 참 좋았다.
교회도 어디나 가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막상 이민을 하고나니 교회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곳에서 산 지가 이제 9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내교회다 싶은 교회를 만나지 못했다.
처음에 찾아간 교회는 목사님도 사모님도 모두 너무 좋았다. 교회에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지만... 어딘가 모르게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것도 안정되지 못했던 나의 처지 탓이었던 것 같다. 구역 모임에서 참여도 하고 여전도회도 나갔지만 항상 타인같았다. 살뜰하게 친언니처럼 나를 챙겨주는 사모님이 계셔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이민 교회 척박하다 말은 많았는데 정말 막상 보니.. 고생하시는 사모님이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속에 심술만 늘어갔다. 저사람은 어떻고 어떻다면서 교회에서 가져서는 안되는 마음만 가지고 교회에 나갔다. 이민가면 교회 안다니는 사람도 교회를 다녀야 사람을 만난다고 하고.. 교회를 가긴가야 하는데 교회가 많아도 어떤 교회를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막상 교회를 가면 갈 때마다 여기는 좀 그렇다며 이런저런 판단을 내리며 내 마음은 점점 돌밭이 되어갔다. (원래 돌밭인가)

교회에 와서 봉사를 한다던지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몸 자체이신 교회를 헌신해서 섬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구경꾼 처럼 손님처럼 주일 성수만을 목적으로 몸 편하게 교회를 다닐 꿍꿍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 가족같은 느낌으로 사랑도 받고 싶고 좋은 사람도 만나고 싶고 교육부에서 아이들도 믿음이 알아서 자라 나가기를 바라는 아주 이기적이고, 약아 빠진 내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동안 사람 좋은 분들만 교회에서 보던 터라, 교회에 나가면 왜이렇게 다들 잘난척 하는 것 같고, 마음 붙일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새가족 모임을 나가도 다들 교회에서 한자리씩은 해보이시는 분들이 저는 사실 새가족은 아니고 한국에서 권사였어요, 안수집사였어요.. 경력을 이야기하고..이곳에 계셨던 어떤 분은 구역장이 되셔서 교회 경력이 굵어서 교회하나 세우고 없애는 것쯤은 유도 아닙니다. 이러시질 않나.. 그런 모습들이 사랑하고 기도해야하는 제목이 아니라 정죄하는 이유가 되어서 내 안의 가시가 늘어나기만 했다. 내모습은 보지 못하고 남들 모습 보다보니 닮을 분도 없는 것 같고, 그래..다들 저렇게 사는데 나도 내맘대로 믿어야지 하면서 마음만 공허해갔다.

그러던 어느날, 비가 억수같이 오고, 집에서 한인 교회는 40분이 좀 더 걸리는데 마침 집근처에 항상 보이던 교회가 있어 거기나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찾아봤다. 사실...주중에 영어로 회사 다니는 것도 고역인데, 주말에 영어로 말씀까지 들으려니...너무 큰 도전이 아닌가 싶었다.
사실..교회에는 교회만의 용어들이 한국에도 있지 않은가. 자매님, 형제님 같은 유명한 낱말부터, 이방인을 Gentile이라 한다던지..... 그리고 내가 잘 아는 단어 Job도 죱으로 읽는다던지... 야고보서인데 제임스라고 한다거나.. 등등등.. 여러가지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오.. 신명기 이런건 단어도 왜이렇게나 긴지..
그 전에 가족 여행을 가서 현지 교회를 종종 찾기는 했었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듣고..공부 못하는 선비가 붓을 탓한다고.. 언젠가는 스코틀랜트 억양이 아주 심한 스카티시 교회 목사님 설교에 멍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콜링우드 시골의 작은 교회여서,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밖에 남지 않으셔서, 우리 같은 비교적 젋은(?) 부부와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니 모두들 얼마나 기특해하시고 축복을 해주시던지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시간의 예배였지만 정말 사랑받고 축복받았다. 교육부가 따로 있지도 않아서 어린 우리 아이를 위해 미키마우스 가면까지 써가시면서 말씀해주시고..정말 감사했다. (그날은 성찬식이 있던 날이었는데 그 교회는 진짜 와인을 주셔서 엄청 놀랐다. 아이들이 먹다가 다 뱉었다.) 그런 좋은 기억이 있어서 한번 가보았다. 외국에 와서는... 특히나 교회 종파를 좀.. 보기는 한다. 이미 서구의 교회는 많이 쇠퇴하기도 하고 타락해서 이단임에도 돈좀 있으면 버젓히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단은 오순절 교회나.. 침례교 정도로 범위를 좁혔다. 북미에서는 내가 다니던 장로교회도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어떤 교회는 종파는 없지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좋은 교회가 있기도 하고.. 많이 알아보고 다녀야 하는 실정이다.
어쨌던, 비가 억수같이 오는날..멀리 한인교회 가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로 근처 교회를 찾았는데 펜타코스탈 교회였다. 다행히 오순절 강림교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고 다녀도 될 것 같은 교회였다. 믿고 가 보았다. 수수한 건물과는 달리 아이를 맡기기 전에 시스템에 등록을 하면 자동으로 스티커가 나와서 아이 옷에 붙이고 들어가는 최첨단 시스템! 예배를 드리다가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예배당 전광판에 그 번호가 뜨고 부모가 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유년부까지) 그 다음주부터는 키오스크에 있는 아이패드로 등록된 이름을 찾고 출석 등록과 함께 자동으로 스티커가 출력되어 나오는 식이었다.
첫째는 청소년부 예배로 가고.. 한쪽 팔에 커다란 문신을 하신 목사님이 힙하게 우리를 맞아주며 첫째 아이를 맞아 주셨다. 그리고 우리도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콜링우드에서 갔던 예배당보다는 젊은 느낌이었다. 찬양팀도 우리나라 젊은이 예배처럼 찬양팀이 찬양을 하고 찬양 사역 전문 목사님이 능수능란하게 찬양을 인도하셨다. 그리고 목사님이 등장하셨는데..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영어로 하셔서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지..걱정도 했었는데..이상하게 목사님 말씀이 잘 들렸다. 그리고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아서 그동안 뻣뻣해져있던 나를 다시 돌아보고 회개할 수도 있게 되었다. 교회에서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영어다보니 그날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게 되고 제대로 이해한건 맞나 보느라 말씀도 다시 읽어보았다. 어떤 건 못알아 듣고 넘어갔지만 점점 모두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좋은 말씀이었다.
이곳은 전도사님 이런 개념은 없고 모두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담임 목사님은 리드 패스터 정도. 장로님들은 있었지만 집사나 이런 개념은 없었다. 요즘 교회의 특징인듯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으셨지만 젊은 부부도 많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목사님이 말씀을 하실 때, 반응이 정말 좋다는 것,
목사님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Amen, Yes, Right 등등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었다. 한 단락이 끝난 것도 아닌데 문장마다 추임새를 넣어주고(?), 목사님이 강조하시는 말씀에는 모두들 박수를 격하게 쳐주었다. 내가 받은 은혜 놓치지 않고 그렇게 목사님과 함께 소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같았다. 목사님은 말씀하시면서, 각자의 문제에 대해 반응을 살피시고 기도해주시곤 했다.
평소에 목사님이 나오시면 목사님이 직접 단상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고 옆에 목사님들이 도와주셨다. 외부 강사가 청빙되면 담임목사님과 허그를 하시고 주먹인사도 나누시고, 캐주얼하게 대하시지만 예의에 어긋나보인 법은 없었다. 모두가 따뜻했고 모두가 동역자였다. 어쩔때 목사님은 신제품을 소개하러 나온 스티브잡스 같기도 했다. 양복은 거의 입지 않으시고 캐주얼하고 입으시곤 했는데,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단정하면 그만 아닐까. 우리 교회 아니고 다른 교회 목사님들 말씀도 가끔 듣는 곳이 있는데 그곳들도 캐주얼하게 티에 청바지 운동화를 신고 말씀하시는 것 많이 보았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으셨다. 중간에 처음에 우리 가족이 말씀을 다시 제대로 접하도록 해주셨던 좋으셨던 목사님은 기독교 방송국 CEO로 이직을 하셨다. 아쉬웠지만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있으신 것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목사님이 오셨고, 새로운 목사님도 너무 좋은 분이셨다.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도 많은 교회여서 각종 지역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교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다른 감동적인 순간은.. 세례받을 때,


교회 단상 위쪽에 침례하는 큰 욕조가 있는데 세례식이 있는 날이면, 세례 하는 모습이 보이도록 욕조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곳이 스포트라이트가 되고 전교인이 축제처럼 축하해주고, 세례 받는 이유를 듣고, 기도를 하고 가족중 한명이 나와서 편지를 읽어준다. 기도도 해주고. 평생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떨리는 목소리가 정말 감동적이고 누군가의 결혼식을 보는 것처럼 눈물이 핑돌고 나도 모르게 축복하며 기도를 하게 된다.

저 중간에 있는 스크린이 없어지면 커다란 세례 욕조가 나타난다

크리스마스 때, 흥이 많은 우리 둘째는 항상 공연에 서곤 했는데, 날씬한 아이돌 타입은 아니어도 매력이 넘쳐서 팬들도 많이 생겼다. 우리 아이가 찬양하면 얼굴만 봐도 행복하다고 주차장에까지 따라와서 인사까지 건내주신 할머니들도 계셨다.

현지 교회가 워낙 종류가 많고 각양각색이라 현지 교회는 이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하지만 기독교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 나라 기독교의 선배격인 북미 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위한 노력을 이 교회에서 볼 수 있었다.

교회가 개독교라고 욕을 먹고 있는 요즘, 다음 세대가 떠나가고 있는 요즘, 예수님의 머리되시고 몸되신 교회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이 교회에서는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 보았던 것 같다. 격식이 없다고 젊은 교회고, 지루한 걸 없앴다고 젊은 교회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그저 목사님이 청바지를 입고 나와서, 가벼운 이야기를 하신다고 교회가 젊어지는 것이 아니고,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요즘식 노래를 한다고 해서 다음세대가 오는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그 누군가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우리에게 생명과 같은지 절박하게 보여주고 교회가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고, 언제든 기다리고 있는 걸 보여주고 있는 교회, 나를 받아주는 그런 교회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교회로 보였다. 우리나라의 교회처럼 북미의 교회도 욕을 먹을 만큼 먹고, 상처도 받을 만큼 받아서, 보수적이고 말씀에 외곬수처럼 보이면 욕이라도 먹을까봐 많이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바뀐 모습은 조금 실망스럽기도 조금 마음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교회는 좋은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가슴 아픈건, 그 모든 격동을 지나, 이제 교회는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교회라며 저기가, 애들한테 좋은 행사 많대, 저기 행사때 후원많이 하잖아.. 이런식으로 알려지는 게 속상했지만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고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이제 이 교회를 떠나기로 했다.
다음은 현지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은근 생각할게 많은 글이라..오늘 다 못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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